건강백과사전

제목: 약,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날짜 :: 2004-04-02
전화번호 :: 외래 033-240-5311
출처 ::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 가정의학과

내용

"밥맛이 없어서 그러니 입맛 도는 약 좀 주세요", "피곤할 때 먹는 약 좀 주세요"라는 말을 진료실에서 흔히 듣게 된다. 사람도 복제한다는 세상이니까 그런 정도는 약으로 다 조절할 수 있다고 믿고 계신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모든 증상이나 질병에 듣는 약이 있어 그 약만 복용하면 다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이다. 실제로 손발이 저려서 혈액순환개선제를 복용하거나 어지러워서 빈혈 약을 드신다는 분을 많이 보게된다. 어떤 이유로 손발이 저린지 혹은 어지러운지는 알아보지도 않고 약을 복용하시는 것이다. 어지러울 때 빈혈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5%밖에 안된다는 사실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손발이 저릴 수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제일 많이 팔리는 약품이 피로회복을 위한 드링크라는 사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로를 약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약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의료비에서 약값이 차지하는 비율이 30%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이렇게 된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으나 그 중 하나로 매스컴을 통한 무분별한 약광고를 들수가 있다. 약 광고를 보면 진단을 하고 치료하는 것이 그렇게 쉬울 수가 없다. '뒷골이 당기십니까? 중풍의 예방에는 XXX' '어지럽습니까? 철분이 부족할 때는 OOO' 원인이야 어떻든 간에 모든 증상들이 약으로 다 치유되는 것으로 나와있다. 나 자신도 광고를 보면서 쓰는 약들이 그렇게 좋은 약들이었나 착각할 지경이다.

또 다른 문제는 누구나가 쉽게 약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광고에서 나온 증상과 비슷하다고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여 복용하는 것이다. 또는 옆집의 누구와 증상이 꼭 같으니까 같은 질환으로 생각하고 같은 약을 구입하여 복용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한 진단이 틀려서 나중에 심각한 지경에 빠졌을 때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이런 식으로 약을 복용하여도 문제는 없는 것인가? 원래 우리 몸은 스스로를 조절하고 지키는 작용을 하게 되어있다. 약은 이런 작용이 잘 안되거나 균형을 잃었을 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우리 몸에서 면역이 없어지면 아무리 좋은 항생제라도 잘 듣지 않는다. 과로를 하여 피곤한 상태라면 휴식을 취해야지 피로감만 감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증상이나 질환이 있을 때는 원인을 확인하고 이것을 고치도록 해야한다.

또 약물에는 부작용의 문제도 있다. 많은 약들은 크던 작던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굳이 약을 복용하여 이런 부작용에 노출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필요한 약은 꼭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나타난 증상을 확인하기 위해 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있고, 약보다는 과로를 피한다거나, 금주, 금연, 운동 등 건강한 생활이 치료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약은 만능이 아니다. 그러므로 약을 복용하기 전에 상담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꼭 필요한 약을 복용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있다. 당뇨나 고혈압 등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분들 중에서 자주 보게 된다. "약을 오래 먹으면 위장을 버리게 된다", " 양약에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오래 복용하면 안된다", "일단 약을 먹게 되면 평생을 먹게 된다", " 왠지 약에 의존하는 것 같아서 싫다"는 것이 이 분들의 이야기이다.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이런 말들의 대부분은 근거가 없거나 일부 사실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약을 오래 복용하면 위장을 버린다는 생각으로 약 복용을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일부 위장장애을 일으키는 약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약들이 더 많다. 장기복용을 해야하는 경우 의사는 보통 위장장애가 없는 약을 권하여 위장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한다. 많은 경우 위의 불편한 증상은 약과는 실제로 관계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약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나 누구나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약을 처방한 의사가 이런 부작용을 확인하게 되므로 처방대로만 복용하면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사소한 부작용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약을 복용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위험을 생각하면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타나는 부작용은 다른 방법을 써서 해결하고 약은 계속 복용해야 하는 경우이다. 상담을 하여 약을 바꾸거나 다른 방법을 찾도록 해야한다. 약을 장기간 권유할 때는 약을 복용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위험이 부작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약이 맞지 않는다고 그냥 약을 먹지 않고 병원에도 오지 않는다면 의사도 조치를 취할 수가 없게 된다. 미리 속단하고 잘못된 선입견을 바탕으로 치료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되겠다.

이렇게 보면 약이라는 것은 참 다루기 힘든 것이다. 너무 가까이 하여 남용하면 불행한 결과가 예상되고, 너무 꺼려 멀리 하는 것도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많은 의료정보가 유포되고 약광고가 쏟아지는 이런 상황에서 아픈 사람들은 약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약을 복용할 때 의사와 상담하는 것이다. 상담한 의사가 자신의 분야가 아니라 자세한 지식이 없다면 조사를 하거나 다른 의사에게 물어서라도 알려줄 것이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귀중한 건강이다. 작은 가구의 색깔을 고르면서도 여러번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는 쉽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